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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월패방군...화산미굴 본문
당월패방군
당월이란 마을이름이고,
패방군은 아마도 마을의 집단을 말하는 것 같다.
우기철에 가까워지면서 하루를 점칠수 없는 날씨....!
비는 그쳤지만 잔뜩 흐린 날씨속에
시골길을 따라 1시간여를 달려서 도착한 곳은
산골짝의 조그만 시골마을....!
마을입구의 커다란 당월패방군의 문을 통과하고도 20여분을 달려서야
강택민의 당월패방군이라는 있는 곳에 도착했다.
가는길...암사 기차역
입구의 양쪽으로 이곳의 특산인 먹과 벼루가 상점마다 가득하고,
값싼 골동품들이 손님을 유혹한다.(물건깎는 재미도 또 하나의 즐거움)
비싸지 않으니...골동품하나 고르려니 시간을 주지 않는다.
먹과 벼루도 사지 못했다(속터짐)
혹~~흔하지 않은 물건 하나 찾아보고 싶었는데...!
조그만 향로 하나 집어 들었더니...2만원 달란다.
가려하니...계산기들고 원하는 가격을 눌러 보란다.
그냥 가겠다니...만원으로 떨어지고...5000원 준다니...7000원만 달라고 한다.
놋쇠로 되었으니...그냥 구입해 봤다.
이 마을은 대대로 "포"씨가 모여 사는 마을로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한 인물에 대한 기념으로 패방을 세워 준 것이라 한다.
마을을 돌아서 길따라 세워진 패방은 7개의 돌로 만들어졌으나
원래는 나무로 만들어 졌다가 보수를 했다고 한다.
7개의 패방은
명나라때...3개가 건립되고...
청나라때 4개가 건립되었다고 하고,
첫번째부터... "충, 효, 절, 의, 절, 효, 충"을 상징한다고 한다.
7개의 패방군이 길따라 늘어서 있으며,
그 옆에는 패방군 인물에 대한 업적을 돌에 적어 놓았다.
이 7개 패방중에 첫번째가 할아버지 패방이고,
그리고 마지막이 손자의 패방이라고 한다.
(이유는 그런 자식을 길렀다하여 할아버지를 가장 훌륭한 업적으로 인정한다고...)
첫번째 이 패방은
포수방의 할아버지를 위해 내린 패방으로
상부에 보면 聖旨라고 적혀있다.
황제가 내린다는 뜻에서 그렇게 적었다.
이 패방은
그 업적을 세운 사람보다는 그의 조부를
포씨(鮑氏)가 모여 사는 이 마을에 직업은 안휘성상인(신안상인)으로서,
18세기에 이르러 이 가문 출신의 포지도(鮑志道와 그의 아들 포수방(鮑漱芳)이
소금상으로 거금을 벌여들인 뒤
이 재산을 바탕으로 장강과 회하의 제방을 축조하고 건륭제가 강남을 여행할 때
그 비용을 전부 부담하여 그 업적으로 우리 나라의 열녀비처럼 국가로부터 하사 받은
마을을 수호하는 묵부(墨付)를 바탕으로 패루를 건립한 것이라 합니다.
7개의 패방마다 그 업적이나 뜻이 담겨 있으며,
그 중에서 한개의 비문을 이렇게 소개한다.(물론 설명듣고 적음)
이 패방은 "효자패방"으로
중병에 걸린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허벅지를 도려서
약으로 닳여드렸다하여 그 효를 기리기위해 세운 패방과 옆에 세운 비문이 보인다.
"홍고정"
아마도 4번째 패방을 지날때쯤...정자가 길을 막는다.
이곳을 지날때는
가마에서 내리고 말에서 내려서 걸었다고 한다.
모자쓴 저분...!
정자지기인줄 알았는데..."안내책자"사라고...중국말도 모르는디.
패방을 따라 가는길...!써레질하는 농부....!
저기...포씨 맞아유....?
대답없다.
포씨 사당
포씨 일가의 대표적인 인물을 모신 사당으로 사당 내부에는
주희가 쓴 친필 글씨좌측으로 節과濂자가,우측으로 孝와忠이 적혀 있었다.
여기가 여자 사당입니다.
이 사당은 여자만 들어갈 수 있대요~~
그럼 더 들어가고 싶은 거 알죠~~~?
그림도...!
들여다보는 사람도 여자네~~~
이 사당내부에는 조각품의 7개 패방이 뜰을 따라 놓여져 있었으니
아마도 항상 본 받으라는 이유에서 일까~~
높은 천장과 집 가운데 하늘이 보이는 네모난 구멍으로
하늘이 보인다.
.
.
.
이곳을 나서며 넘 섭섭함에 저 여자를 찍었다.
누구냐고요...?
황산까지 책임 질 조선족여인...!
왜냐구요~~?
.
.
.
사실 이 옆동네 "훙춘"이라는 마을이 제일 가보고 싶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록되어 있다고 하는 "훙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와호장룡 영화에서 날아다니는 장면을 찍은 월호(월소)가 있지만
문인들의 고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춘주전국시대 제나라의 재상이였던 관중...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장량...
삼국지의 조조와 주유...
명의로 알려진 화타....
성리학의 전통을 세운 정호와 정이 형제...
주자학의 대가.... 주희....
명나라를 개국한 주원장....등
이리 많은 인재가 이곳에서 태어났다하니 어찌 그냥 지나칠수 있으랴~~!
가이드를 꼬셔 보았지만
퉁명스런 조선족 여자 가이드 한마디로 거절이다.
속터져~~!
그 다음부터 물어보고 싶은 말도 안 물어 보았다.
화산 미굴가는 길
이곳은 천연동굴이 아닌 인공동굴로
누가 무슨이유로 왜 만들어지를 알 수 없어 화산미굴로 이름지어졌으며,
그굴의 숫자가 36개나 된다고 하니...대단하기는 하다.
그중 2호 석굴과 35호 석굴만 공개하고 있다.
가는길 좌,우로 승마장...사격장도 보인다.
타는 사람보다 말이 더 많았다.
화산미굴 가는 길
이곳에 가면 가마와 손수레가 타는 사람보다 많다.
재미로 가마를 타 보았다.
둘이 천원...잘 들어야 한다...둘 이천원.
탔다가 기절을 하고 내렸다.
남자 둘이 메는줄 알았다...
그런데 뒤에 가녀린 여인이 멘다.
가마가 뒤집어 질뻔했고...20발짝도 못 가서 주저 앉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그만 탄다고 내렸다...끝까지 타란다.
그냥 돈 2천원주고 내가 사정해서 보냈다.
가마는 아무나 타는게 아니네~~ㅎㅎㅎ
일행
높지도 않은 바위산에 이렇게 파 놓았다.
설명 안해도 아시죠...?
(절대 못 읽어서 안 쓴거 아님...ㅎㅎ)
사람이 팠다는 증거로 이 곳에서 발견된 공구들을 입구에 전시해 놓았다.
모든 굴의 모양이 두부를 자르 듯 각지게 잘라서 깎았으며,
깎아낸 그 돌이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없다고 하니...
만리장성의 돌담을 쌓았으리라 생각했으나
돌이 틀리다고 한다.
종류석
천연동굴과 인공동굴의 차이는 종류석으로 알수 있다고 한다.
사진의 아주 작은 종류석으로 볼때 2~3천년전의 동굴로 추정한다고 한다.
동굴 내부의 무늬따라 깎아낸 바위 모습
대나무로 만든 조각배
돌아오는 길 다리에서 내려다 보니
저기에 웬 이태백..."있더라
저렇게 조각배띄워 동동주한잔에 세상을 잊으면
어디 이태백이 따로 있으랴~~
.
.
사랑일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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