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에서 한시간 거리의 외곽~ 하찌오찌시.
그곳에 그다지 웅장하지 않는 후지 미술관이 있다. 마주보면 창가대학교의 공과대학관과 나란히 도서관, 본관이 보이는 곳. 길가 벚꽃나무의 밑둥으로 보아 아마 봄이면 가관일 벚꽃길의
꽃구름이 장관이 아닐까 짐작되었다.
숲을 뒤로하고 후지미술관 뒤에는 牧口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군부가 희생시킨 세계적인 교육자 牧口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의 규모가 놀랍도록 웅장하고 거대하여 각국의 대표자들이 모이는 세계적 규모의 행사가 다달이 열린다고 한다.
이미 안내를 받았지만 후지미술관의 보물급의 진귀한 그림이나 조각 미술품들의 명성은 익히 들어 얼마나 설레었던가. 두달전부터 전시한 그림의 전시만료기간이 1월15일로 아슬아슬하게 이 그림을 볼 수 있는 행운에 뛸 듯이 기뻤다 입구에는 안내 팜플렛, 기념카드등을 파는 로비에서 줄서서 기다린 끝에 문제의 그림 <제9의 파도>를 관람할 수 있었다.
그림의 전방 2미터 지점에서 본 느낌은 사실적인 묘사와 위용에 압도당해 통역이 없어도 사전지식이 없어도 그림이 나타내는 의미는 금방 마음에 닿았다고 할까.
산더미같은 파도-아니 바다의 반란, 파도의 위력은 이번 여름 매미란 태풍때문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실감되었다. 마산에서는 바다의 배를 육지로 밀어올리고 광안리 수변공원의 3톤 무게의 방파제로 만든 돌더미가 파도에게 이리저리 농락당해 쓸려 나간일, 바람에 쇠난간이 휘어지고 해변카페는 휘몰아치는 바람에 백사장의 모래가 3-4층까지 유리창을 깨고 날아들어 모래무덤이 된 일등. 인간에게는 천재지변, 재해라고 하지만 자연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에도 의미가 있으리라.
그림은 생과 사의 투쟁, 그야말로 절박한 상황을 말하고 있었다. 난파선의 돛대- 이미 부러져 여섯명이 간신히 매달려 덮쳐오는 파도에 속수무책인 채...한명은 정신마저 잃었는지 쓸려가려는 것 같은 모습 한명이 혼신을 다해 동료를 붙잡고 있으며 붉은깃발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하는 절규의 또 한 사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수십미터의 파도가 솟구치며 십여미터 떨어진 곳에 부서진 배조각에 매달려 잎사귀처럼 흔들리는 한사람을 향해 덮쳐오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린 그림이었다.
몇시간 전까지만해도 한 배를 타고 항해하던 동료였으리라.
본능적으로 살아야하는 사명감에 살고자 하는 투쟁으로 노도에 맞서는 장렬한 인간의 삶! 인내와 용기!
항해하는 이들에게는 8번의 쉬운 파도와 3번의 격동의 파도가 있다고 한다. 그 중에 9번째의 파도의 위력은 파도의 주기중에 가장 무서워서 이 파도만 넘으면 평온을 되찾는다고 한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러시아의 대화가 아이바조프스키이며 그림을 그린 연대는 1850년 화가의 나이 32세였다고 한다. 60년의 화가생활동안 6000여점의 그림을 남겼으며 해양화의 대가라고 하는 아이바죠프스키의 유년은 가난한 어촌에서 태어나 교육의 혜택도 없이 언제나 낙서를 하면 그림을 그리며 바닷가에서 놀았는데 그의 재능을 인정한 지방유지의 도움으로 예술의 도시 상트베테부르크에서 그림수업을 받아 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해군에 복무하며 해양생활을 접했기에 이런 대작이 사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었고 32세란 나이에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생각되었다.
말년에는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장학사업, 학교설립,복지등을 위한 많은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계속~
~~석우님의 글~~
-music- 인간 - 비.바람 1악장 /신윤식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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