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티노올
수해....그리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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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녀의 바다 -삼천포항 대방에서-
오늘은 시어머니 모시고
오후에 김해 한림 공장에 가보려구요.
애들처럼...버릇이 되어 시동생을 삼촌이라 부른답니다.
외국에 가 있거나 서울이나 지방출장이 아니믄 시동생은
형수가 부르면 반가이 달려옵니다.
나 태워가자고...형님공장이 이제 어느정도 자리잡아
밤에도 기계를 돌려야 한다니 고마워서...바빠도 즐겁게
집에가서 어머니 싣고 매장에 형수 싣고 가겠다고...
공장이 수해에 다 잠기어 고무보트를 타고 옥상에 강아지를
건져 온 적도 있었지요 두해전, 여름입니다.
물이 빠지고 난 공장은
온갖 오물과 돼지썩은 냄새...
분뇨가 기계와 범벅이 되어 목불인견..바로
그 장면이었습니다.
자연재해였고 비를 퍼부은 하늘이 무심하다 여겼지만
수해의 원인은 윗지방에서 댐을 열고 낙동강 제방과 지류인 화포천의
제방이 20여미터나 유실되어 거대한 호수로 한림에서 바라본 삼랑진 쪽은
수평선이 아득한 바다처럼 한림의 너른 들녘은 끝없는 바다였습니다.
제가 수해 일주일전
여행한 중국황주의 서호라는 호수를 방불케 했습니다.
배로 몇시간을 돌아도 다 못 돌던...서호처럼
한림땅의 수십만평이 모두 호수가 되었던 악몽의 여름.
철길에서 바라보면 수심이 4-5미터를 넘었으니 이층 사무실만 섬처럼
빼곰히 보이고 한동은 아예 잠겼으니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지요.
보름넘게 잠기어 있던 공장이 낙동강 원류가 빠지자 물이 빠졌는데
수해복구를 위해 우리 공장직원들이 처음 공장에 장화를 신고 들어갈 때
모두 구토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저더러는 그것을 보면 쓰러진다고
공장에 못오게 했습니다.
전국에서 달려온 적십자사 봉사원들과
우리 신앙하는 사람들....손발을 걷어부치고 헌신적으로 복구해 주신 수백명,
그분들께 빨리 공장을 돌려 보답하겠노라고 했지만 보상의 길은 없었습니다.
집과 농토, 농작물은 보상기준이 있지만 기업은 왜 보상이 없다는 말인지
그렇게 불합리한 법이 과연 국민의 안전과 생명, 재산을 지키는 국가의 법이란 말인가
국토를 관리한다는 국토관리청은 무엇을 하며
지방자치제 시대의 김해시는 무엇을 하며
농업기반공사는 지류의 둑관리를 어찌 하였길래 속수무책
비만 오면 이렇게 무참이 둑들이 무너지는가?
(제방이 유실되어 낙동강 원류가 유입되었으니 제방부실의
인재가 분명하여 보상을 요구하였으나) 김해시가 지급하는 위로금 200만원으로
피해 7억의 공장을 복구하려니...cnc 기계는 먹통이고 전 기계를 모두 분해하고 다시
전기시설의 배전공사를 하고 중소기업청, 도청, 관공서는 다 뛰어다니며 수해복구자금
지원금 요청을 했지만 말단 공무원은 온갖 자료를 요구하며 지원금 대상에서
우리 공장은 제외되었습니다.
원인은 한번 실패로 은행에 부채가 있으니 그 부채부담이 크고
자신들의 평가기준에 저의 제무제표가 못미치며 바로 직전연도에 당기순손실이
지원금을 못받는 원인이라 했으며 울면서 경남지방 중소기업청 지원담당 본부장과
통화하며 지원을 호소하니 자기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했지요.
담당직원은 대통령이 와도 자신이 정한 원칙은 바뀌지 않는다고...요즈음은
밑에 사람이 더 힘이 있다는 사실도 내비치며
현장에 일하는 자신의 위력을 강조하더군요.
그 돈은 내 재산의 피해보상도 아니고 나라의 돈을 복구하라고 저리의 이자로
빌려주는 것인데 그리해도 되는지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내가 꼭 다시 일어서서
공장을 일으키고야 말겠다고 그때의 울분에 지금도 가슴이 답답하며
그 직원의 이름을 분명히 기억하지요.
연일 매스컴이 떠들고 워낙 피해가 심했던 지역이었으니
한창 경선중이던 현 노대통령도 비행기로 내려왔었고
이회창 당시의 한나라당 총재와 김영일 사무총장등, 낯익은 인물도 얼굴을 보이며
처참한 수해현장을 답사했지만 이렇다 할...아무런 득도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천문학적인 어마어마한 정치자금을 차떼기로 받아서
얼마나 국민을 위해 요긴하게 썼는지는 모르지만 그리 나라살림을 살면서
어찌 서민의 피같은 내 재산은 잃고도 찾을 길 없고....아니 지원금도 이런저런
규제에 묶여 빌려주지를 못하는지 분할 때는 정말 한심한 행정에
가슴을 치기도 했습니다.
결국은 사채와 고리의 돈으로 복구를 하고 회복되지 않는 경기와
점점 제조업이 힘든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의 투쟁은 처절하기까지 하지만
이땅에서 땅투기와 중간유통을 기막히게 하는 대기업이 아닌 다음에야
부자가 되기는 틀렸고 잃은 재산과 먹고 사는데 지장없이 살려면
하루하루가 정말 전쟁처럼 투쟁의 연속이니 질 수야 없지요.
삶의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말 열심히 사는 수밖에....
성실하게 현장에서 일만 하는 남편과 공장직원들과
일용직 아주머니들...모두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부산에서 한시간 거리의 공장까지 현장에 일을 할 사람이 없으니
힘든 상황이지만 그동안 수해후 개발한 아이템이 서서히 매출 증가의
길로 들어섰으니 숨을 쉴 정도가 되었습니다.
수해는 우리 개인의 엄청난 시련이었고
극복하기 정말 힘든 현실이었지만 열심히 살아 극복하였습니다.
그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은 신앙이었고
어머님의 기원의 덕분이었고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 왜 이런 시련을 겪느냐며
현장에 달려와 격려해주던 많은 이들의 성원의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내려갈 데 까지 내려가 이제는 더 내려갈 곳이 없이 바닥이니
그 바닥을 박차고 오르는 수 밖에....정말 힘빠지고 여기저기
돈을 줄곳만 늘어 갈 데는 힘이 빠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벌어서 갚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오늘도 위풍당당히 나아갑니다.
자본주의의 현대에서 물질과 돈의 위력은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며
돈은 정말 공기와 같아 없으면 숨을 쉴 수가 없고
돈은 정말 피와 같아 없으면 목숨이 위태로와 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도 그 길위에 있지만 시련을 극복하고 보니
마음을 모아 서로를 존중하고 격려하며 참아 나가면 언젠가
함께 웃을 수 있는 날이 온다는 것을 -그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나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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