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티노올
"창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보고... 본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1919년 4월 13일
1945년 11월 김구(金九) 등이 환국할 때까지 일제의 강제점령을 거부하고 국,내외를 통할·통치했던 3권분립의 민주공화정부.
"상해 임시정부"에서 시작하여
"항저우"로 -->"난징"으로 -->"창사"로-->"광저우"로-->"류저우"로-->"치장"으로-->"충칭"까지.
임시정부는 이 기간 동안 7번이나 청사를 옮기면서 광복정책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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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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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서 일까?
숨어서 활동을 하기 위해서 일까?
골목길을 돌고 돌아서...허름한 곳에.
담길의 구석진 곳... 전봇대에 녹슨 철재로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남청목 6호"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지구"이라는 이정표를 만난다.
눈을 크게 뜨고보지 않으면 못 보고 지난다.
또 다시 만난 골목길에는 우리가 왜 왔는지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윗통을 벗어 던지고 더위와 싸우고 있고
골목골목 집앞에 걸려있는 옷자락들 속에는 보기 민망한 빨간 팬티도 걸려있다.
"장사 임시정부 활동 지구"는 1937년 ~ 1938년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윤봉길 선생님의 의거로 포악해진 일제의 탄압·보복·미행·수색·압거 등을 피하여
임시정부는 1932년 5월 이후 1940년까지 8년 동안
자싱[嘉興]·항저우[杭州]·쑤저우[蘇州]·전장[鎭江]·난징[南京]·창사[長沙]·광저우[廣州]·류저우[柳州]·구이린[桂林]·치장[F江] 등
10여 곳을 전전하며 남서쪽으로 이동하였다.
"김구 선생님" 안녕하슈??
인사를 하면서 찍었더니 흔들렸네요~!
한국말을 북한에서 배웠는지 어설픈 한국말을 하는 중국인 안내원 여인의 첫 말.
선생님께 인사하지요~!! 묵념~!!
"방공호"
묵념을 하면서 바닥을 보니 발밑에 일본군을 피해 숨었던 방공호가 보인다.
창사에서의 김구선생과 임시정부요원의 활동과정을 비디오로 보고, 부엌,침실,회의실등을 돌아본다.
"주우은래,모저동등의 중국 인물들이 자주 찾았다는 설명"
중국말인지...한국말인지...알 수 없는 절반밖에는 알아 들을 수 없다.
김구선생의 자제분이 다녔다는 야리중학교의 설명과 사진이 걸려있다.
한국인 관광객을 의식해서일까?
주은래,모택동,장치중 후난성주석등의 친분관계를 자세히 말하고 있으며,
이곳에서의 생활은 많은 도움으로 안심하고 생활했다고 적혀있다.
특히, "창사"에서는 김구라는 이름으로 호라돌했다고 적혀있다.
1938년 한인방송이 그리고 한인 우편함 생김.
1938년 5월 6일 김구외 4인이 회의 중 총격을 받은 곳.
그럼, 안심하고 활동했다는 설명은 모야??
"이청천의 침실"
여보세요?
다 보셨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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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빨리 장가계로 갈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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