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일기...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의 수도 _비엔나...쉔부른 궁전

728x90
반응형
BIG

오스트리아의 수도 

오늘이 5월 5일 어린이날....4일차 되는 날이다.
짤스부르크를 떠나 할슈타트를 거쳐 드디어 오스트리아의 수도....영어로 Vienna 비엔나, 독일어로 Wien 빈 입성했다. 

"쉔부른궁전과 정원"[ Palace and Gardens of Schönbrunn ]

쉔부른궁전 18세기부터 1918년까지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으로, 건축가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Johann Bernhard Fischer von Erlach)와 니콜라우스 파카시(Nicolaus Pacassi)가 설계했다는데, 아름다운(schoen) 분수(brunn)을 뜻 한다고 합니다...


-퍼온 글-  -지식백과-

16세기 중기에 황제 막시밀리안 2세(Maximilian II)는 오늘날 쇤브룬 궁전의 자리인 카터부르크(Klosterneuburg) 지역을 클로스터노이부르크(Klosterneuburg) 수도원으로부터 사들였다. 황제는 이곳을 사냥용 오두막과 동물원으로 개발하였다. 쇤브룬 건물들은 1605년 빈에 침입한 헝가리인 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황제 페르디난데 2세(Ferdinand II)는 1622년까지는 쇤브룬을 복구하지 않았다. 1637년 페르디난데 2세가 죽음으로써 이 지역은 카터부르크의 과부 곤차가의 엘레아노라(Eleanora of Gonzaga) 소유가 되었다. 1642년에 ‘아름다운 샘’(Beautiful Spring, 아름다운 우물이라고도 함)이라는 뜻의 쇤브룬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옛 건물들 옆에 3층짜리 대저택을 건축하였다.

빈은 1683년 터키의 공격을 받았고, 빈의 도시 주변과 쇤브룬에 큰 피해를 입었다. 전후에 재건을 계획할 때 황제 레오폴트 1세(Leopold I)는 이탈리아에서 교육을 받은 건축가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에게 황제의 후계자인 요제프 대공에게 줄 왕실을 건립하라고 명령하였다. 피셔 폰 에를라흐의 첫 번째 디자인은 이미 준비된 재능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의 디자인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큰 찬사를 받았다. 이에 그는 더 많은 임무를 부여받았다.

1699년 황제 레오폴트의 혼례를 기회로 황제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두 번째로 설계를 수정하였다. 공사는 1696년에 시작하였는데 건축가 피셔 폰 에를라흐가 직접 지휘하였다. 중앙부분 공사는 1700년에 완공하여 거주할 수 있었으나 1701년 스페인 계승 전쟁 발발과 1711년 황제 요제프 1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공사를 중단해야 했다. 완성되지 않은 건물은 과부 황비 아말리아 빌헬미네(Amalia Wilhelmine)의 소유가 되었다.

1740년에 왕위에 오른 마리아 테레지아가 쇤브룬을 왕실로 선택함으로써, 쇤브룬은 새로운 활기를 되찾았다. 응급 수리는 1742년~1743년에 실시했으며 나중에는 3단계(1743~1749, 1753~1763, 1764~1780)로 나눠 주요한 구조 변경 공사를 하였다. 첫 2단계 작업은 피셔 폰 에를라흐처럼 왕실과 궁전의 건축가가 된 니콜라우스 파카시가 거의 모든 작업을 직접 지휘하였다. 세 번째 단계는 글로리에테, 넵튠 분수, ‘로마 유적’, 오벨리스크 등 정원 꾸미기였는데 이 작업은 요한 페르디난트 헤첸도르프 폰 호헨부르크(Johann Ferdinand Hetzendorf von Hohenberg)의 지휘로 완성되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후계자 요제프 2세와 레오폴트 2세는 쇤브룬에 약간 관심이 있었다. 쇤브룬은 1792년~1835년까지 황제 프란츠 1세의 여름 별궁으로 쓰였고 1848년~1916년까지는 프란츠 요제프의 삶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냈다. 프란츠 요제프는 옛 로코코 양식의 장식등 몇 가지를 수정 복원했다. 궁전의 건축 역사는 1870년에 끝났으며, 그 뒤로는 의미 있는 변경은 없었다.

 

 

"할슈타트"에서 오는 길...."멜크 수도원"이 보인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수도원이라는데....꼭, 가보고 싶었지만 일정상 그냥 지나치고 ~~지나는 길에 사진 찍었습니다.

멀리서 지나는 길에 차창으로 보았는데 엄청 큰 수도원이었다.


빈(비엔나)거리

마차와 오토바이,사람과 전기충전용 버스, 전차가 함께하는 도로...뭐든 움직이는 것은 전부 한개의 도로에서 움직이고 있다.

마차가 앞에 가니 차들이 전부 뒤따라 갑니다...역시 관광의 도시답다. 1차산업이 발달되었는데 농사는 짓지않고, 낙농업이 발달되어 요구르트, 질좋은 소고기, 양모산업이 발달되어 1차산업으로 1.7%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매년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중에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힌 비엔나라고 한다. 사람들이 살기좋은 도시를 주관적으로 판단하지만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인 교통, 문화, 치안, 환경, 의류, 복지,경제성장률 등 순위권 안에 들어 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5만불의 나라..어쩜 이들이 잘 살고 있을까~?

금융, 관광수입으로....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3차산업이 67%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자종차는 수입을 하지만 부품은 이곳에서 안 만들면 독일의 자동차가 굴러가지 않는다...건축이 발달되어 땅굴파는기계, 공법이 유명해 북한의 땅굴도 오스트리아 공법으러 만들었답니다...붕괴됐던 성수대교도 오스트리아에서 설계된 다리라고 합니다.




 

"쉔부른궁전과 정원"[ Palace and Gardens of Schönbrunn ]

여기가 쉔부른 궁전 가는 길...쉘부르궁전이라 말하지만 아닙니다.

 

똑부러지는 "쉔부른궁전" 해설사 설명...

그러나 다음날 다 까 먹었습니다...뭘 적을까 생각하다가 지식백과에서 퍼왔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2세가 수도원을 사들여 사냥용 오두막을 짓고 정원을 꾸민 것이라니...이게 오두막이면 집은 어디 있는겨???



궁전을 돌아서 정원으로 가는 길의 작은 정원 모습들...





여기가 정원인 듯...정문에서 돌아 들어가면 뒷편에 커다란 정원.

보통 앞에 정원이 있는데 이 궁전은 뒷편에 정원이 있습니다...어찌되었든 축구장 서너개 만큼 넓었다.



저 언덕의 "그레이트 파르테레"를 중심으로 조각상들이 줄을 지어 있었는데, 같은 거리 간격으로 균형을 이루어 세워진 신들의 상들이 심어진나무들과 기하학적 균형을 이루고 있는 듯 했다...저 나무 숲속은 미로로 만들어 졌다는데 입장료를 받는다고 해서 ....오스트리아에 와서 미로에 빠질가봐 그냥 갑니다.



"글로리에트 파르테레" 앞에 "넵튠분수"

"글로리에트 파레이테"...."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기념하는 기념비라고 합니다.

지금은 커피숍이라네요~~!

그런데 멀리서 보면 아닌거 같은데...입장시간 때문에 가 보지는 못했다.

밑에 양쪽으로 분수대가 있는데 이른시간이라서 아직은 조용~~!

"넵튠"...바다의 신 해왕성이라는데..분수대의 이름.

 


이 3층 건물에는 1441개의 방이 있다는데, 합스부르크 왕가의 화려했던 생활을 일반인에게 45개방만 공개하고 있답니다.

나폴레옹2세가 거주했던 방도있고...모짜르트가 6살때 연주를 하고 청혼을 했던 모습이 담긴 그림도 있었다...아마도, 10살이상 연상이었다는데...





궁전건물 상부에 늘어서 신들의 상들이 궁의 수호신 같아 보인다.


궁전 내부로 입장합니다.

이제는 사진촬영 금지입니다....젠장...사진도 없고 설명도 생각 안나고 그냥 끝입니다.


사진 한장도 못 찍고 나왔습니다...ㅎㅎㅎ.



‘아름다운 샘’(아름다운 우물)

"합스부르크왕조"...황제 막시밀리안 2세(Maximilian II)가 만든 여름별장..."쉔부른 궁전"

 그런데...이 느낌은 뭐지 ?

내부의 웅장한 대작을 원없이 보았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밥은 먹었지만 배고픈 느낌....!!

궁전안의 사진을 하나도 못 찍었으니...지금은 그 느낌이 다 사라져 버렸다.

 

아~~!

이제는 내가 그렇게 기대했던 곳... "벨베데레 궁전"으로 간다.

그곳에 가면.......꼭....싶었던.....그것이 있다.




728x90
반응형
B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