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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기...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벨베데레 궁전"_"클림트"_"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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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베데레 궁전"(Belvedere)

"벨베데레"라는 뜻은  " 전망 좋은 " 이라고 하는데...오스트리아의 공용어가 독일어이지만 이 "벨베데레"라는 말은 이태리 말이라고 한다.

궁전은 상궁과 하궁이 있는데 상궁의 테라스에서 내려다 보면 비엔나 시가지 전망이 매우 아름답고 예뻐서 "전망좋은" 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이 궁전은 "쉔부르궁전"을 지은 건축가와 어깨를 나란히했던 바로크 건축의 거장 "힐데브란트"가 설계를 했다는데, 아름다운 바로크 건축물로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벨베데레" 궁전은 사보이 왕가 "프린츠오이겐" 왕자의 여름 여름별장으로 사용했다고 하며, 현재 하궁에는 중세시대 미술작품이 상궁에는 19세기, 20세기의 현대 미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벨베데레 궁전" 가는 길

여기가 정문 같은데 궁전의 크기와 넓은 정원의 규모에 비하면 정문은 아주 작았다.


정문의 왕관을 지키고 있는 사자상이 재미있다.


상궁의 정원


여기가 상궁의 미술관 매표소....20유로다.

매표소 입구에 걸려있는 클림트 작품이 보인다.



 

 

상궁과 하궁사이의 정원

상궁 2층 테라스에서 하궁을 내려다 보면 넓고 시원한 정원이 보이는데 상궁과 하궁 사이의 이 정원은 프랑스식 정원이라 하네요~~ 


"스핑크스 여인상"

사람의 얼굴과 가슴... 사자몸에 독수리 날개를 달고,....

이 정원의 구석 구석에 버티고 앉아서 왕궁을 지키고 있는데....그 예쁜 젖가슴은 사람들의 손때로 반질반질하다...

이런거...만지고 소원빌면 소원이루진다는 말...어딜가나 있다....그 말에 아무리 목욕을 시켜놔도 가슴은 새카맣다고 한다.

사실...나도 너무 예뻐 보여서 만져 보았다...사진도 한장...ㅎㅎㅎ.



궁전 현관의 "헤라클레스"

4개의 기둥을 각각 떠 받치고 있다...힘들어 보인다.

궁전의 1층에 자리잡고 있는 이 동상...누군인지 기억이 안난다...아마도, 오스트리아는 터키를 지배 받았는데, 그 터키를 몰아낸 오이겐장군 아닐까~~!!

이 궁전도 그가 지었다고 하는데...오른쪽 안쪽으로 들어가면 터키를 몰아내면서 획득한 전리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돈을 내라해서 안 들어갔다.


미술관 2층 첫 관람실에는 "쟈크 루이 다비드"그림으로 유명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그림이 걸려 있었다.

옛날 수학의 정석(?)표지에 있던 그림으로 생각이 나는데, 나폴레옹의 지시에 의해  알프스산을 넘는 용감한 모습을 그렸지만 실제로 나폴레옹은 겁이 많아

전쟁의 선두에 나서지도 않았고 말을 타고 알프스를 넘은 적도 없다고 한다...그런데.....이 그림 원작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면...가작인 것 같아 보인다.

그림을 보면 실제 앞으로 전진하는 말이 수염이나 꼬리가 날리는 방향이 반대로 그려져 있다..옛날에 그림의 모순에 대한 논쟁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나폴레옹의 용감함을 억지 표현하기 위한 나폴레옹과 화가 다비드의 의도였던 것 같다.


여기는 미술관을 들어서기기 전의 하궁을 내려다 볼 수있는 테라스가 있는 곳...

여기까지만 사진 촬영이 된다.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입구에는 "클림트"의 "키스" 작품의 모조작이 있어 사진 촬영 할 수 있었는데...그 마저도 없다.


벨베레데 궁전내부의 2층 전시실...

"구스타프 클림트"와 그의 제자 "에곤실레"의 작품있는 곳으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키스(The Kiss)>, 유딧 (Judith I),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의 초상(Portrait of Adele Bloch-Bauer)>등 유명 작품과 그의  풍경화도 있다. 클림트의 에곤 실레(Egon Schiele)의 걸작 <죽음과 소녀(Death and the Maiden)>나 <포옹(The Embrace)>,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의 작품 등도 있다. 그외 리하르트 게르스틀(Richard Gerstl)의 <웃는 자화상(Selbstbildnis, Iachend)>도 눈길을 끈다.


바닥에 이 설명은 기억이 안나네~~


"구스타프 클림트"에 얽힌 이야기들...

사람이 죽기전에 보아야 할 100가지를 정하라면 그 100가지 중 한 가지가 이 궁전에 있다.

상궁의 미술관에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라는 작품이다..아무리...아무리 돈을 많이 주고 빌려 달래도 절대 빌려주지 않는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그림전있을때 요청하였지만  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많은 사람들이 이 "벨베래데 궁전"을 찾는 이유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라는 작품을 보기 위해 찾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물론, 나도 "클림트"의 작품과 그의 제자 "에곤 실레"의 작품을 보러 이곳에 왔기 때문이다..그 중에서도 여기서 아니면 절대 볼 수 없는 "키스"라는 작품을 보기 위해 왔노라~~!

드디어... 미술관으로 들어섰다....수 많은 작품 중 몇 작품을 소개합니다.
(사진은  촬영불가로 "키스"는 내가 구입한 그림을 촬영했고, 다른 사진들은 인터넷 백과사전등에서 가져 옴)

"구스타프 클림트" 그리고 그의 제자 "에곤실레"

"키스"

이 표정은 거부의 표정일까~? 사랑에 빠진 후 황홀함의 표정일까~?

"키스"라는 작품은 사랑하는 남녀의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린 작품 같아 보인다. 클림트가 제수씨의 여동생을 사랑하게 되는데  제수씨의 여동생 "에밀리"와 짤츠캄마굿에 여행을 다녀와서 그린 그림이다. 둘 사이에는 사랑은 했지만 자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정한 거리가 있었고, 그 내용이 이 그림이 담겨져 있는 듯 했다. 사랑의 적극적인 자세가 이니고 피하려는 듯한 모습,..키스하려는 남자의 입을 피하려는 듯한...감싸 안고 있는 손은 떼어 놓으려는 듯한...생각은 다른 남자를 생각하고 있는 듯한 몸은 약간의 엉거주춤한 표현들이다..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금으로 장식되었고 반짝이는 별빛을 그리고, 동글동글하게 꽃을 그려 넣어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또한, 그림에서의 남녀의 표현을.....여자의 몸에는 원형으로 여성 성기 모습을 표현했고, 남자의 몸에는 네모로 남성 성기 모습을 표현하였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많은 유명한 작품을 촬영하지 못해서...

"유딧"

"유딧"

관능적...섹시함.

섹슈얼리티와 죽음....그림은  성에 대한 본능과 죽음에 대한 본능을 보여주는 듯 했다.


아름다운 여인(과부)"유딧"은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정조를 버리는 대신 술을 먹인 후 "앗시리아" 적장 목을 잘랐다.

적장의 목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기쁨, 희열을 느끼는 표정인지..겁에 질려 있는 듯한 표정인지...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도 적장의 벤목에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면 섬뜩했을지도 모른다...이 작품은 우리나라에도 들어 온적이 있는데, 내가 간 날은 다른 곳으로 빌려주어 실제 보지는 못 하였다...속 터지네~!!


"레이디 인 골드"


"레이디 인 골드"

"영화"....실화로 유명했던 "우먼인 골드"....
이 영화의 그림 "레이디 인 골드"...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경매된 1500억짜리의 초상화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이며, 자신의 후원자였던 ‘아델레’를 모델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그려서 선물을 했다....영화의 이야기는 대충 이러하다~~ 
초상화의 주인 "아델레"가 죽은 뒤 그 남편은 나치정부에 작품을 몰수 당하고 그의 조카 "마리아 알트만"에 유언을 남긴다. 1998년 조카 "마리아 알트만"은 8년의 소송을 거쳐 국가를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이야기다...
1998년 시작된 소송은 2006년 미국으로 반환되고, 이 그림은 1억3500만 달러에 클림트 그림 애호가인 로날드 로더에게 낙찰되어 뉴욕 노이에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이 초상화를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고 부른다고 하는 오스트리아 작품이 왜 미국으로 반환되었는지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해바라기"

"해바라기"
당시의 화가들은 해바라기를 많이 그렸는데, 클림트의 해바라기는 너무 너무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클림트의 속 마음을 그린 작품으로 사랑하는 가장 사랑했던 "에밀리"의 다소곳한 고개숙인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클림트의 풍경화에는 인물이 없고, 꽃만 그려져 있는 것이 특색이다...클림트는 여자와 꽃을 좋아해서 사람들은 그를 "꽃의 화가"..."여자의 화가"라고도 말한다....그 외의 "신부" 등 많은 초상화가 있지만 생략하고 그의 제자 "에곤 실레"방으로 간다.

광고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펜잘"의 케이스에 있는 그림..."클림트"작품이다...그의 작품은 특이해서 한눈에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 삶
체코의 보헤미아 출신의 엄마,아버지로 오페라가수 어머니와 금,은 세공을 하는 아버지로 1862년 비엔나 근교에서 태어난 그는 한마디로 바람둥이였다고 한다...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신의 그림 모델은 모두 품에 안았다고 한다. 
향락과 무질서, 난잡함...나체와 성을 다루었던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비엔나 국립대학교 등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나, 학교 이미지와 달리 너무 외설적인 그림으로 학교,언론,시민들의 혹평으로 벽화 그리기를 포기하게 되었다.  사진이 나오기 시작하던 시기지만 부와 명예를 자랑하기 위해 정계,재계의 사모님들의 그림 요청으로 초상화를 그리게 된다.그 후 그는  아버지의 직업인 금,은 세공의 영향을 받아 그림에 금과 은으로 덕지덕지 입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18년 55살...스페인 독감으로 죽자마자 유전자 검사로 14명의 친자식이 밝혀졌고, 수 많은 여자 중 정말 좋아했던 사람은 제수씨의 여동생을 사랑했던 "에델레"였다고 한다...."클림트"가 죽어서도 혼자 살았고 나중에 죽어서는 "클림트" 무덤옆에 나란히 누웠다고 한다. "키스"라는 작품은 1906년에서 1908년 2년간 짤츠캄마굿의 호수 여행을 다녀와서 그린 그림이다.

 

"에곤실레"
클림트의 제자 이지만 그 느낌은 확~~바뀐다. 느낌은 전혀 달랐다...화려했던 클림트의 작품과는 달리 "에곤실레"는 어두운 느낌, 죽음의 공포스런 표현, 마른 여자의 모습, 검은 남자의 모습등은 남,녀의 헤어짐을 죽음으로 표현하고 있었다..많은 작품 중 대표작 "죽음과 소녀" 소개 해 본다.


 "죽음과 소녀"

 

"클림트"의 모델이었던 "발리 노이칠"...그는 "에곤실레"의 모델이 되고 사랑에 빠진다...하지만 "에곤실레"는 "발리 노이칠"과 결혼 할 생각은 없었다.

이 그림으로 이별 고하며 보낸 그림이다. 그림에서는 사랑을 버리고자 하는 "에곤실레"의 죄책감과 아직은 사랑을 하고 있어 매달리는 "발리 노이칠"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발리 노이칠"은 "에곤실레"에 버림을 받고 종군간호사로 지내다가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미술관을 떠나며.....
클림트가 그림을 그리던 당시 화가들은 귀족들의 이야기, 성경의 이야기를 그림의 소재로 그렸다, 그림을 사는 사람은 귀족들이기 때문이다.
바티칸에 가면 "천지 창조"... "최후의 심판"..."최후의 만찬"..."노아의 방주"..."에덴동산"을 그렸듯이.....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코스....
모짜르트가 결혼미사를 하고, 장례미사를 치렀던 성 스테판 성당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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