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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미래로가는길

미래로가는길(빌게이츠)....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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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사람들이 여러 곳에서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덜그럭거리는 타자기 모양의 단말기들을 전화선을 통해 컴퓨터에 연결해 썼다.

따라서 우리는 컴퓨터의 실물을 접한 적이 거의 없다.

 

컴퓨터 사용료는 엄청나게 비쌌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컴퓨터 공동 사용료는 시간당 40달러였다.

40달러가 있어야 도도한 컴퓨터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끌 수 있었다.

PC를 한 대 이상 가진 사람이 적지 않고 그것도 하루종일 놀려두기 일쑤인 요즘과 비교하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물론 그 시절에도 컴퓨터를 살 수는 있었다.

18,000달러를 주면 디지털 이퀴프먼트사(DEC)에서 만든 PDP-8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 컴퓨터는 중형 컴퓨터 로 불렸지만 요즘 기준으로 보면 대형이었다.

PDP-8은 가로 세로 각각 60센티미터에 높이는 180센티미터였으며 무게는 120킬로그램 정도였다.

 

우리 고등학교에도 한때 그 컴퓨터를 들여놓은 적이 있었는데, 나는 컴퓨터 앞에 붙어 살았다.

PDP-8은 우리가 전화선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대형 컴퓨터에 비하면 용량이 무척 작았다.

계산능력은 아마 오늘날의 손목시계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값비싼 대형 컴퓨터처럼 프로그램을 처리할 수 있었으므로 어쨌든 컴퓨터는 컴퓨터였다.

즉 소프트웨어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는 말이다. 비록 성능은 보잘것 없었지만 PDP-8은 누구나 개인 컴퓨터를 가지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는 희망을 우리에게 심어주었다.

내가 PC 개발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것도 나 자신이 컴퓨터를 그만큼 간절히 원했기때문이다.

 

그 무렵에는 컴퓨터 하드웨어처럼 소프트웨어도 값이 비쌌다.
컴퓨터 기종마다 소프트웨어를 따로따로 만들어야 했다. 컴퓨터 하드웨어가 바뀔 때마다(그런 일이 자주 생겼다) 소프트웨어 구축을 위한 표준적인 블록(예를 들면 수학공식표)을 기계와 함께 제공했지만 기업체 고유의 특수한 문제를 처리하려면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

 

일부 공유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있었고 몇몇 회사에서는 범용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기도 했지만, 시판되는 소프트웨어는 극소수였다.
학비와 용돈은 부모님이 대주셨지만 컴퓨터 사용료는 내 혼자 힘으로 마련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소프트웨어 산업의 상업성에 눈뜬 것도 그런 계기를 통해서였다.

폴 앨런과 나는 초보 수준의 프로그래밍 일자리를 얻었다.

여름 한철을 일하고 5천 달러를 받았으니 고등학생에게는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일부는 현금으로 받았고 나머지는 그 액수만큼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으로 받았다.

우리는 또 소프트웨어의 오류를 알려주는 대신 해당 기업의 컴퓨터를 공짜로 쓰기도 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을 배정하는 프로그램도 작성했다.

몇 가지 명령어를 몰래 덧붙여서 여학생반에 혼자 들어가는 희열을 맛보기도
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컴퓨터의 세계에서 손을 떼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중독되어 있었다.
폴은 컴퓨터 하드웨어에 대해서 나보다 더 많이 알았다.

내가 열여섯 살이고 폴이 열아홉 살이던 1972년 어느 여름날, 폴은 나에게 일렉트로닉스(Electronics)'지 143쪽 한귀퉁이에 실린 열 줄짜리 기사를 보여주었다.

인텔이라는 신생기업에서 8008이라는 마이크로프로세서 칩을 내놓았다는 내용이었다.


마이크프로세서는 컴퓨터의 두뇌에 해당하는 부분을 송두리째 담고 있는 간단한 칩이다.

폴과 나는 이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가진 성능이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폴은 이 칩의 성능이 빠르게 향상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컴퓨터도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컴퓨터 업계에서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핵심으로 컴퓨터를 만든다는 발상은 못하고 있었다.

 

일렉트로닉스 지의 기사를 봐도 8008을 계산, 제어 시스템, 또는 고성능 단말기 같은 의사결정 시스템 에 적합한 물건으로 소개했다.

그들은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범용 컴퓨터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느렸고,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 한계가 있었다.
8008은 프로그래머에게 익숙한 언어들을 하나도 처리하지 못했다.
따라서 8008용으로 복잡한 프로그램을 작성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8008 칩이 이해할 수 있는 몇십 가지의 간단한 명령어로 모든 응용 프로그램을 작성해야 했다. 8008은 복잡하지 않은 단순 반복작업을 묵묵히 수행하는 데 적격이었다.

그래서 계산기와 엘리베이터에 많이 쓰였다.
달리 표현하자면, 엘리베이터 조작반 같은 데 내장된 간단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비숙련자가 연주하는 북이나 뿔피리 같은 단순한 악기라고 할 수 있다.

그것으로는 기본적인 리듬이나 복잡하지 않은 가락을 연주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에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진 강력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뛰어난 오케스트라와도 같다.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나 악보만 있으면 어떤 곡이든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다.


폴과 나는 8008이 어떤 프로그램을 처리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폴은 인텔에 전화를 걸어 매뉴얼을 요청했다. 인텔은 곧바로 매뉴얼을 보내왔다. 그것을 보고 우리는 약간 놀랐다.

 

우리는 매뉴얼을 파고들었다.
나는 용량이 작은 DEC사의 PDP-8용으로 베이식 버전을 작성한 적이 있었으므로 인텔의 작은 칩을 위해 똑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8008 매뉴얼을 읽어보고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8008은 정교하지 못했다.

 

트랜지스터의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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