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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기.일본2.도쿄,아타미,나고야.

3일차...나고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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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고야성...名古屋城

 

나고야성은 오사카성(坂城), 구마모토성(熊本城)과 함께 일본 3대성으로 불릴만큼 아름답다고 한다..실제 사진에서만 보아왔지만, 그만큼 아름다웠다.

특히, 보통 산에 지은 성과는 달리 평지에 지었다고 하는데 "도쿠가와이예야스"가  실제는 동경에 살면서 당시 에도시대의 수도인 교토를 다니면서

중간에 쉬었다가 가기위해 지은 것이라 한다....이후 도쿠가와이예야스가 죽으면서 19명의 아들중 1명이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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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東京]에서 약 350㎞의 거리에 있는 나고야는 신칸센[新幹線]으로 2시간 걸려서 이곳에 왔다.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고 나섰으나, 너무 더워서 걷기도 힘들다...

건널목을 건너 나고야성 입구에 도착하니 벌써 땀이 범벅이 되었다.

 

 "특별사적"...이라는 간판...그리고, 나고야성이라는 한글판 간판이 보인다.

이 나고야성의 "특별사적"은 일본의 문화재보호법에서 지정한 45개중 하나라고 한다.

 

 

 

 

나고야성의 입구에 들어서자

앞,뒤,좌,우에서 우렁차게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조금이나마 더위를 식혀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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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돌로 지어진 성곽을 따라 가노라니

특이한 느낌이 들었다.

일정한 크기의 돌이 아니고 어딘가 불규칙적이고

지그재그로 지어진 커다란 돌덩이 성곽이

불안하게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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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는 무슨 글씨가 새겨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불규칙적으로 쌓아놓은 돌과 그 돌에

새겨진 이름에는  그 이유가 있단다.

 

 

 

 

 

입장권의 표 파는 곳.

아래의 정문.

 

정문의 지붕 위...

용마루 끝에 물고기 모양의 "사치호코"가

눈에 들어온다.

 

나고야성은

일본 모모야마[] 후기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라 하는데, 오사카성[]·구마모토성[]과 함께 일본의 3대 성으로 꼽힌다.

나고옥()이라고도 한다.

 

제2차대전에서 소실되었다고 하는데

1959년 천수각과 함께 재건되었다고 한다.

 

 

 

 

"세이난수미야구라"

 

정문을 따라 들어서면서 왼쪽의 작은 성.

앞으로 내굴이 파여져 있고 서쪽을 따라 길게 파인 해자에는 숲을 이루고있고

그곳에 물대신 사슴이 놀고 있었다.

이곳이 "세이난수미야구라".!!

 

서,남쪽에 세워진 지붕2층, 내부3층의 "야구라"는

군사용으로 적을 물리치기위한 수단으로 세워진

작은 성으로 아마도, 본성을 지키기 위한

외곽초소인 듯 보였다.

 

서,북쪽에도 있다고 한다.

 

 

 

 

 

 

 

"천수관 가는 길"

 

커다란 돌을 쌓아 날렵한 곡선을 만든 돌담에는 조각문형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 문형은 여러무사들이 자기가 가져 온 돌을 알아보기 위해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성벽을 둘러서 성벽아래는 꽤 넓고 깊은 해자가 파져있으나 물은 없고 사슴이 뛰놀고 있었다.

 

 외부로부터 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사방을 둘러 해자를 파 놓았고

그 곳에 물을 담아 두었다고 한다..

지금은 물이 없지만 이곳에 물을 담아두면 아마도 쉽게 쳐들어오지는 못했을 것 같다.

 

 

 

 

"천수각"

 

3층의 소천수관과 7층의 대천수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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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도를 따라 전망대의 7층으로 엘레베이터로 올라  오사카 시내를 구경하고 한층한층 내려오면서 구경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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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에서 바라다 보는 북쪽의 입구를 따라

해자를 파 놓은 모습...이곳에는 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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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시내건물들은 그리 관심은 없기에...

 

가까이 보이는  파란 지붕이 동판이 눈에

들어온다.

동판에 녹이 생겨 파랗다고 하는데

 동판의 지붕이 오래 견디기에 사용된다고 한다.

 

 

 

 

 

 

긴샤치..금호...金 魚虎

 

한문의 표기가 고기어변에 호랑이 호자.

 

이 "긴샤치"는

화재를 예방하기위한 기원의 의미로 시작되었다는데나중에는 성주의 권위 상징으로 지붕의 용마루위에 금장식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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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차 세계대전 당시 대천수관과 함께

전쟁의 화재로 소실되어

1959년 다시 만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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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수관 지붕 용마루위에 세워진 긴샤치 모습

 

 

 

 

전망대에서 내려오면서 전시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 무사들의 돌을 옮기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가장 큰 돌을 가져오면서

자신의 충성을 맹세하였으리라~!

 

실제로 당겨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한번 당겨보았다...만만치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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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일본검이 전시되어 있었다.

정말 그 끝이 너무 날카로워서 섬뜩하기까지 하였다.

 

내가 검도를 하지만 이것은 검도용..싸움용이라기보다는 살인용의 무기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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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이던가??4층이던가??

나고야성의 상징..

머리는 범의 모습, 몸은 물고기 형상을 한

"긴샤치"에서 사진 촬영을 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대천수각 지붕의 용마루 끝에 얹은 금으로 만든 샤치호코(머리는 호랑이, 몸통과 꼬리는 물고기 모양을 한 장식물)는

성과 함께 나고야의 상징물로 여겨질 만큼 유명하다고 하는데... 

암수 한쌍의 샤치호코는 1612년 천수각 준공할 당시 215kg의 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예전에 사치히코의 금을 훔치려했던 도둑이 있었다고 한다. 소천수각은 2층 건물로 대천수각과는 달리 소박하고 아담하다

 "일본을 천하통일했다는 3인방"의 모습이 보인다..임진왜란의 주범자..가등청정의 모습도 보인다.

 

오다 노부나가 vs 이토 히로부미 vs 도쿠가와 이에야스

풍운아 오다 노부나가는 '파괴의영웅' 으로 기존의 일본이란 집을 부수고 통일 일본인이라는 집을 지을 터를 마련한 군인, 전략가형이라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집 지을 터를 닦은 인물로 전시수상 재목이었던 데 반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위에일본 통일이라는 집을 완성한 인물의 평화시의 수상감으로 비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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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사람의 성격을 비유한 이야기가 있다.
손 안의 새가 울지 않는 다면 어떻게 했을까?

다혈질에 성격이 급한 오다 노부나가는 즉시 죽여 버리고, 꾀가 많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떻게든 새가 울게 만들고,

느긋한 성격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렸을 것이라고 한다.

죽은 나이도 노부나가가 49세, 히데요시 62세, 이에야스가 75세로 그들 성질 급한 순서대로 였다고 한다.

 

 

"에도막부의 생활 모습" 전시관

 

원래는 이마가와씨가 세웠다고 하는데..

1521년부터 1528년까지 쌓은 성.

 

 몇 년 뒤 폐허가 된 것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통일을 이룩한 후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1610년부터 다시 축조해 1612년 완성하였다고 한다.

이후 1867년 에도막부[] 시대가 끝날 때까지 오와리[] 도쿠가와 집안의 성으로 17대가 살았으며 메이지(明治)까지 이용했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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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이예야스의 갑옷이 보인다.

체구는 그리 크지 않았던지 갑옷이 작아보였고,

이 갑옷은 가슴부위가 뽀족하게 튀어나온 모습이 특이하였다..그것은 화살이나 검이 옆으로 비켜나도록 갑옷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검들을 보관하는 방,

책을 보는 서재 모습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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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을 볼 수 있는 층에는

식단...부엌...등이 보이며

특히

"휴식처"라는 곳이 재미있는데...

자세히 보니 주막이었다.

 

 

 

 

 

 

 

나고야성 재건의 모습

 

우리나라 남대문

소실후 재건 당시의 모습이 생각났다.

전국의 가장 좋은 나무를 도끼로 잘라 재건하는데 사용되었다는 모습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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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대천수각도 화재에의한 소실 후 재건 당시의 사진을 입구에 전시해 놓았다.

 

3개의 성무와

3개의 문은 소실되지 않아 문화재로 지금까지

내려온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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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수각은 보수공사중이라서 관람이 불가능 했다. 

 왼쪽의 공사중인 "소천수각"...오른쪽 "대 천수각"

 

 

 

 

"아쯔다 신궁"

 

나고야성을 나와서 일본 초대 천왕의 할아버지의 검을  모신다는 "아쯔다신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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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천왕의 상징에는 세가지가 있다고 한다.

"검"과  "옥" 그리고 "거울"이라고 한다.

이곳은 천왕의 검이 있다는 곳이다.

 

입구의 도리이에는 녹나무고목으로 만들어졌고 그 기둥에 녹나무가지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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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의 공사로 관람은 하지 못했다.

검을 보고 싶었지만...보지 못했다.

 

 

 

 

 

 

 

 

이곳에도 무녀가 보인다.

아래 사진의 차와 건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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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사람들은 차를 사면

이곳 아쯔다신궁에와서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이 건물의 고사지내는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 했지만

촬영을 못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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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여야 할까??

사진 촬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곳이 너무 많다.

그만큼 엄숙하다는 의미일까? .... 숨기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공개를 하지 않으려는 의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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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시하는 그들의 문화, 국왕에 대한 엄격한 충성심...국왕의 신성화.

가장 가까운 나라이지만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우리와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다니는 길을 돌아보니

옛날의 일본과....지금의 일본을 한번에 보는 듯 했다.

그리고

왜 그들은 그토록 많은 반대속에서도 참배를 강행하는지를....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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